THE FIRST : 수술 판도를 바꾼 위대한 도전

수술 판도를 바꾼 위대한 도전

경희의료원 정형외과 최초 수술의 역사

2021년 <프러포즈>는 경희의료원 개원 50주년을 기념하여 의료원의 역사와 최초의 순간을 담은 ‘The First’ 연재 코너를 마련합니다.
첫 순서는 경희의료원의 르네상스를 열었던 1976년 국내 최초 절단된 대퇴부(허벅지) 재접합 미세수술에 이은 정형외과 최초의 수술 이야기입니다. 아래 기록은 당시 수술을 집도하고 관계했던 유명철 석좌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재구성한 것입니다.

1976.2.27

최초 절단 허벅지 재접합 수술 성공

유명철, 김봉건, 안진환 교수팀

잘린 다리는 어디 있습니까?

1976년 2월, 경희의료원 응급실에 허벅지에서부터 다리가 잘린 젊은 남성이 실려 왔다. 회기역 근처 목재소에서 전기톱을 사용하다 발생한 갑작스러운 사고였다. “잘린 다리는 어디 있습니까?”라고 묻는 의료진에게 환자와 함께 온 이들은 “목재소 톱밥 더미에 있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빨리 찾아오라”는 다급한 목소리가 재접합 수술의 시작이었다.
처음 시도하는 수술인 만큼 시간도 오래 걸렸다. 장장 7시간에 걸친 대수술이었다. 뼈와 근육, 혈관, 신경, 힘줄이 이어져 마침내 절단된 허벅지가 접합됐다. 발가락까지 피가 통하는 것을 확인했을 때 수술팀의 가슴에도 짜릿함이 통했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혈관이 다시 막히면 괴사가 진행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밤낮을 마음 졸이며 환자를 간호한 의료진은 3일 후, 이 수술이 확실히 성공했음을 환자와 가족에게 전했다.
절단된 허벅지를 잇는 것은 전 세계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국내 뉴스는 물론, 해외에서도 센세이셔널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팔과 다리, 손가락, 발가락이 절단된 환자가 전국에서 경희의료원을 찾아왔다. 잘린 것도 붙여 살아나게 한 의술인데, 다른 질환이야 말할 것도 없지 않겠냐며 환자가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병원에 온 환자를 미처 다 볼 수 없을 정도로 환자가 많이 왔습니다. 연말연시인 12월 31일부터 1월 1일 아침까지 재접합 수술이 이어졌어요. 농담으로 2년 동안 수술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죠. 해가 바뀌는 연말연시의 밤샘 수술은 대퇴부 재접합 수술을 시작했던 1976년부터 5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절단 사고를 당한 환자를 대하는 유명철 교수의 의지는 지독할 정도로 특별한 면이 있다. 철도 사고로 손목이 절단돼 평생 의수를 꼈던 부친의 곁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손과 발이 절단된 환자에게 새로운 삶의 희망을 주는 일은, 아버지의 그것을 치유하는 일이기도 했다. 유명철 교수를 비롯해 당시 수술팀에 있었던 교수들 모두 이 최초의 수술 이후 국내 정형외과 미세접합술, 미세재건술 분야의 대가가 됐다. 경희의료원 정형외과가 명성을 떨치게 된 시발점이자, 경희의료원이 한 단계 크게 도약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된 일대 사건이었다.

1976.10.12

최초 발목 인공관절 대치술 성공

김영룡, 강신혁 교수팀

의료원 정형외과, 인공관절 르네상스 시대를 열다

인공관절은 1950년대 영국에서부터 시작됐다. 고관절(골반과 대퇴부를 잇는 엉덩뼈) 부위에 최초로 도입됐다. 지금과 비교하면 열악하고 조악한 형태지만 이로부터 인공관절의 발전이 이어졌다. 이후 무릎 인공관절 대치술도 생겨났다. 고관절과 무릎 인공관절 대치술밖에 행해지지 않던 1976년 10월, 경희의료원에서 아시아 최초로 인공 발목관절 대치술의 성공을 알렸다. 지금은 발목뿐 아니라 어깨, 팔꿈치, 손목, 손가락까지 인공관절 대치술이 활성화됐지만, 당시만 해도 큰 이슈가 된 수술 사례였다. 경희의료원 정형외과의 인공관절 대치술이 유구한 역사와 전통, 경험을 쌓으며 활발한 의료 활동을 펼치게 된 것도 이로부터 시작됐다. 이후 경희의료원 정형외과는 국내 최초로 척추, 어깨, 무릎, 발목 등 세부 전문 진료분야를 나누는 분과를 시도했다. 전문 진료분야마다 환자와 수술 케이스가 쌓이면서 전문성은 더욱 높아만 갔다. 유명철 교수 역시 1970년대 초부터 인공 고관절 수술을 시작해 40여 년간 인공 고관절 수술 1만 5,000회 성공이라는 대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단일 병원 한 명의 의료진에게 나온 이 같은 기록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

1978.10.26

최초 발가락을 손가락에 이식하는 수술 성공

유명철, 강신혁 교수팀

엄지발가락, 엄지손가락이 되다

1978년 손가락 5개 모두가 절단된 환자가 응급실에 왔다. 곧바로 손가락 재접합 수술을 시행해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4개의 손가락을 잇는 데 성공했다. 엄지손가락이 없으니 손가락 기능의 50%밖에 쓸 수 없었다. 무엇보다 엄지손가락을 상실한 환자 본인이 너무나 힘들어했다.
만약 엄지발가락을 엄지손가락에 이식한다면? 유명철 교수는 1976년 대퇴부(허벅지) 재접합 수술 성공 이후, 잘린 부위를 재접합할 수 있다면 다른 신체 부위도 떼어 접합할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철저한 수술계획을 세운 후, 엄지발가락과 엄지손가락의 동맥 촬영을 완료했다. 면밀한 연구와 시뮬레이션을 거친 끝에 살아 있는 엄지발가락을 떼어 상실한 엄지손가락 부위에 이식하는 수술을 세계 최초로 시행했다. 수술은 엄지발가락을 떼는 수술과, 손가락 부위에 새롭게 이식하는 수술 두 축으로 진행했다. 무려 16시간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어떻게든 성공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의료진 모두가 화장실 가는 것 외에는 수술실을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혈관과 신경, 힘줄을 박리해 이식하기 편리하도록 절단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였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엄지발가락은 엄지손가락을 대체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글도 쓰고, 과일도 깎고, 돈도 셀 수 있게 됐다. “수술 전후 물음표는 ‘모양’에 있었어요. 기능은 제대로 하더라도 손가락보다 더 굵은 엄지발가락 모양이 괜찮을까 걱정됐죠. 신기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굵었던 엄지발가락의 크기가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2년 후쯤 되니까 반대편 엄지손가락과 얼핏 비슷해지더라고요.” 이 같은 결과는 유사한 미세접합술의 예후를 판단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유명철 교수는 이를 ‘용불용설’에 빗대어 설명했다. 자주 사용하는 기관은 발달하고 그렇지 않은 기관은 퇴화한다는 학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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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09.19

최초 뼈성장판 이식술 성공

정덕환 교수팀

죽은 뼈를 되살린다는 것

성장판은 관절 부위에서 뼈를 자라게 하는 디스크형 조직이다. 선천적 결손이나 외상, 염증 등으로 손상될 경우 뼈의 성장이 멈추고 심하면 팔다리가 뒤틀리게 된다. 특히 팔꿈치에서 손목에 이르는 뼈는 요골(橈骨)과 척골(尺骨)로 구성돼 있는데, 어느 한쪽이 성장을 멈추면 심한 왜곡현상이 나타난다. 뼈성장판 이식술 역시 대퇴부 재접합술과 발가락-손가락 이식술의 연장선에 있다. 다른 부위를 떼어 이식해도 피가 통해 살릴 수 있다면, 살아 있는 뼈의 성장판도 상실된 성장판에 이식해 제 기능을 살릴 수 있다는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뼈성장판에 들어가는 혈관은 워낙 가늘기 때문에 이를 박리해 이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덕환 교수팀은 ‘선천성 요골 결손’으로 손목이 뒤틀린 환자에게 비골(무릎에서 발목 사이 종아리뼈) 상단에 있는 성장판을 뼈, 연골과 함께 분리해 이식하는 수술을 성공했다. 미세혈관현미경을 이용해 혈관까지 잇는 수술로 미세수술 분야에 또 하나의 획을 그었다.

1997.07.30

최초 무항체 혈우병 환자 종양제거수술 성공

정형외과 수술팀

칵테일 요법으로 출혈을 막다

혈우병은 선천성 유전병으로 피가 멎지 않는 병이다. 피가 멎지 않으면 그 후유증은 관절에 나타난다. 혈우병 환자들은 팔꿈치, 고관절, 발목 등 관절 내 반복 출혈로 관절이 점차 소실되면서 제대로 걷지 못하거나 손발이 오그라드는 고통을 겪는다. 엉덩이 출혈로 수박 3개를 합친 크기의 혹을 단 어린 혈우병 환자가 있었다. 큰 혹을 떼는 것 자체도 어려운데, 수술 중 출혈이 환자의 생명에 위협을 줄 수 있기에 국내 대형병원 모두가 수술을 마다한 상황이었다. 한국혈우재단 직원은 미세접합 수술에 능한 경희의료원 정형외과 팀이라면 혹을 뗄 수 있지 않겠냐는 마지막 희망으로 유명철 교수를 찾아왔다. “저도 그렇게 혹이 큰 환자는 처음이었습니다. 혹을 떼는 것은 잘할 수 있겠는데 지혈이 문제였죠. 혈액응고인자를 투여해도 그 약에 면역이 생기면 다시 지혈이 안 되거든요. 결국 4가지 혈액응고인자를 섞은 칵테일 요법을 통해 출혈을 막아 수술에 성공했습니다.” 혈우병 환자의 종양제거 수술 성공 사례는 세계혈우연맹을 통해 각국에 보고됐다. 유명철 교수는 그 인연으로 현재까지 한국혈우재단에서 한 달에 두 번 혈우병 무료진료를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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